찌낚시의 세계로
낚시를 처음 배운 그날이 기억난다. 2020년 6월이었다. 전 세계를 뒤흔든 COVID-19도 친구를 멀리해야 하는 명분을 만들지는 못했고 그날 저녁도 나는 친구들과 부산 동래의 어느 중화요릿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코로나가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레 각자의 취미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M은 이제 막 돌 지난 아들이 있어 취미생활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S는 술 마시고 노는 거 말고는 딱히 취미랄 게 없는 친구였다. 나는 17년 경력의 조기축구맨이지만 코로나로 학교 운동장이 폐쇄되는 바람에 닭 쫓던 개처럼 텅 비어버린 주말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있었다. J는 코로나 피해가 전혀 없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낚시였다. 주말의 무료한 시간을 채울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서 그런지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안 가던 낚시 이야기가 솔깃하게 들려 질문을 던졌다.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낚시라는 세계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고 점점 이야기가 자랑 섞인 무용담으로 변질될 무렵, J의 말을 자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낚시 시작하려면 뭐부터 사야 하노?" 두 사람만의 낚시 이야기가 끝을 모르고 길어지자 M과 S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둘의 성화에 못 이겨 낚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 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J의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취미에 빠져드는 내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J와 따로 만나 낚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2년 정도 찌낚시와 원투낚시를 하고 있는 친구는 나에게 찌낚시를 먼저 해보길 권했고 그 대상어는 감성돔이었다. 친구는 갯바위에서 감성돔을 처음 잡은 날, 낚시의 진정한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감성돔으로 대상어를 정한 걸까? 동출 친구를 만들기 위해 감성돔을 미끼로 내건 걸까? 하지만 바다의 왕자(감성돔)는 물길도 읽을 줄 모르는 초보 조사에게 잡힐 만큼 호락호락한 녀석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른 채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갯바위에 내리면 발판을 확인하고 자리를 잡는다.
- 짐을 풀고 캔커피를 마시면서 조류와 지형을 파악한다.
- 1호 찌를 쓸지 2호 찌를 쓸지 결정을 한 다음에 채비를 준비한다.
- 선장님이 알려준 수심에 맞춰 면사 매듭을 조절한다.
- 전자 찌를 체결하고 30분 정도 캐스팅을 연습한다.
- 날이 밝아오면 수중여가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밑밥을 투척한다.
- 감성돔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몰려드는 감성돔을 마릿수로 낚아 올린다.
낚시에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중 한 가지는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크 타이슨 -
Lv.1 조사의 입문장비 구매
갯바위 출조를 삼일 앞두고 부산 동래구에 있는 낚시방 만어를 찾았다. 유튜브를 찾아보며 무슨 장비를 사야 할지 대충은 찾아봤지만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장비들과 채비들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사실 입문장비는 중고로 구매하는 게 제일 좋다. 왜냐하면 낚시가 나랑 안 맞을 수도 있는데 한번 사용한 입문장비는 처분하려면 가격을 많이 내려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그런 장비를 중고로 사면 부담없이 낚시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낚시방이란 곳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만어에 들렸다. 이곳은 내가 대학생 때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라 항상 눈에 들어왔었는데 내가 여기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낚시는 그저 나이 많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바람 쐬러 다니는 취미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 때문이긴 하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딱 나이 많고 할 일 없이 주말에 바람 쐬러 다닐 곳을 찾는 사람이 돼버렸다.
J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먼저 매장에 들어갔다. 빨간색 세로글씨로 만어라고 적힌 유리문을 밀어젖히고 들어가자 밝은 형광등으로 가지런히 정렬돼 있는 직사각형 구조의 매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선반들과 진열장을 가득 채운 수천 가지의 장비와 채비들이 나를 압도했다. 내가 사야 하는 장비는 몇 개 되지 않았지만 마치 뭔가에 홀린 듯 만어 안을 떠돌고 있었다. 코너를 돌아 낚싯대가 늘어서 있는 벽 쪽으로 가서는 낚싯대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는 숫자들과 낚싯대 이름인 듯한 영어들이 적혀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가장 강렬하게 끌리는 낚시대 앞에서 발을 멈췄고 가격이 적힌 견출 스티커를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내가 잘못 본거겠지? 0이 하나 더 붙은 게 아닌지 자세히 보고 있는데 언제 도착했는지 J의 말소리가 들렸다.
"친구야 그쪽 아이다"
J는 내가 보고 있던 낚싯대를 가리키며 본인도 아직 못 사고 있는 낚싯대라고 말했다. 낚싯대 중에서도 명품에 속한다는 그 낚싯대는 고기를 걸면 가만히 있어도 고기가 알아서 떠오른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낚싯대를 다시 쳐다보니 갖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150만 원이나 하는 낚싯대라니 아직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장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J는 아래쪽에 진열돼 있는 낚싯대 중에서 초심자가 쓸만한 녀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용성 씨파크 1-530이라고 적혀있는 낚싯대는 디자인이 깔끔하고 초보인 내가 보기에도 튼튼해 보였다. 무엇보다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 8만 원 대 낚싯대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음 편하게 갯바위에서 휘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낚싯대를 받아 들고 이름을 조용히 되뇌어보니 친밀감이 느껴졌다. 나에게 딱 맞는 장비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막 무기가 생긴 Lv.1 조사 케릭은 기다리고 있을 모험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낚시 케릭을 하나 만들고 비어있는 인벤토리를 대, 릴, 원줄, 목줄, 찌, 채비 순으로 하나둘씩 채워나갔다. 소요된 금액은 대략 30만 원. 계산을 마치고 한 손에는 낚싯대 케이스를, 또 한 손에는 릴 박스와 채비가 든 황갈색 봉투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차량 뒷좌석에 장비들을 고이 모셔놓고 내려다보니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들뜬 마음으로 J와 아귀찜을 먹으러 갔다. J는 아직 사야 할 게 한참 남아있다며 부담 아닌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갯바위 신발도 사야 하고 지금 계절에는 대충 입고 가도 되지만 겨울이 되면 낚시복도 필요하고 가방이랑 바칸 밑밥통 등등 다 사려면 2~3백은 깨질 거라고 했다.
"그 말은 만어에 들어가기 전에 했어야지?"
아귀찜이 나오기 전까지 J는 감성돔을 잡기 위한 반유동 채비에 대해 설명해주며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강조했다. 우리의 출조지는 거제 해금강 갯바위이고 예약해둔 배가 새벽 4시 출항이니 여기서 새벽 2시에는 출발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면서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J와 첫 낚시 쇼핑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뒷좌석에 놓인 낚시 장비를 보고 있자니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새로운 취미생활을 시작한다는 설렘과 또 한 가지는 두려움에 가까운 막막함이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걸 집사람한테 어떻게 설명하지?'
첫 낚시 구매 목록
- 용성(Yongsung) 씨파크 1-530
- 다이와(Daiwa) 레브로스 SP 2500
- 선라인(Sunline) 이소 스페셜 경기 머스라드2
- 선라인(Sunline) 브이하드 V-HARD 후로로카본 1.75호
- 3000원짜리 구멍찌 1호 / 2호
- 찌스(Zzis) 전자구멍찌 V6 오렌지 1호 / 2호
- 3V 리튬배터리
- 가마가츠(gamakatsu) 토너먼트 치누 감성돔바늘 3호
- 매니아(MANIA) 순간수중찌 1호 / 1.5호 / 2호
- 해동(HDF) 반달구슬 SS
- 해동(HDF) O형 찌쿠션 고무
- 해동(HDF) V형 찌쿠션 고무
- 뮤(MU) 올코팅 천연고무봉돌 G1 / B / 2B
- 키자쿠라(kizakura) 도래 KZ 컬러 스위벨 8호
- CK조구 우레탄 찌매듭 레드
- 아티누스 AG-883 장갑
- 크레모아3 캡온40B 충전식 LED 캡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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